오늘은 하루 종일 ‘타인 우선’으로 살고 배려를 하게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오늘 하루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기.”
작은 다짐이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조금 두려웠다.
평소에도 남을 배려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대부분 ‘여유가 있을 때’였지, 내가 급할 땐 언제나 나부터였다.
출근길 지하철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자리가 하나 남았을 때 평소 같으면 바로 앉았을 텐데, 이번엔 뒤에 서 있는 어르신께 양보했다.
“앉으세요.”
평범한 한마디였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작은 행동 하나가 내 하루의 시작을 바꿔놓은 느낌이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일부러 동료들의 편의를 먼저 생각했다.
회의실 예약을 내가 먼저 잡지 않고, 모두가 편한 시간으로 조정했다.
급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상대 말을 끝까지 들어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상대가 내 말을 더 진지하게 들어주는 걸 느꼈다.
배려가 돌고 돌아 돌아온다는 말, 진짜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 종일 남을 먼저 챙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동료들이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는데, 평소엔 “난 이거 먹자”라고 의견을 냈던 내가
오늘은 “다들 먹고 싶은 거 해요”라고만 말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로 결정됐다.
그 순간 약간의 불편함이 올라왔다.
‘이게 진짜 배려일까, 아니면 그냥 희생일까?’
그 사이의 경계가 참 모호했다.
오후 회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이 먼저 나오자 일부러 양보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난 뒤 내 안에 작은 불만이 쌓였다.
“왜 내 의견은 말하지 않았을까?”
그제야 깨달았다.
‘배려’는 나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상대도 살고 나도 편한 균형점을 찾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오후부터는 방향을 조금 바꿨다.
무조건 양보하는 대신, 상대를 먼저 배려하되 내 생각도 부드럽게 제안하기.
“이 의견도 좋지만, 이 방향은 어떨까요?”
이 한 문장만으로 대화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진짜 배려는 침묵이 아니라 소통의 온도 조절이었다.
하루가 끝날 무렵,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웠다.
남을 배려하려고 집중하니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감정소모가 줄었다.
예를 들어, 평소 같으면 누군가 무례하게 굴었을 때 속으로 짜증이 났을 텐데
오늘은 ‘저 사람도 피곤한가 보다’라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니, 감정이 휘둘리지 않았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며 문득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일이 이렇게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내가 남을 도왔다는 만족감보다,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구나’ 하는 자존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결국 이 실험의 결론은 단순했다.
배려는 타인을 위한 것 같지만,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순간, 세상도 나를 조금 더 부드럽게 대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매일은 아니더라도
하루에 한 번쯤은 이렇게 다짐해보려 한다.
“오늘은 나보다 남 먼저.”
그 작은 다짐 하나로 내 하루는 훨씬 따뜻해질 테니까.
이 하루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남을 배려한다는 건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말 한마디, 시선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